어떤 사람들은 허무주의야말로 인생을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 믿는다. 근데 대부분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니까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허무주의가 인생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람들은 이를 한껏 잘못 이해한 것이다. 아마 그 사람들은 허무주의를 '모든 것은 의미가 없어'라기보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없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후자의 마음가짐은 확실히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전자는 그럴 수 없다. (reject eternalism)
허무주의는 우리를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우리가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하고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는다. 허무주의는 결코 괜찮은 사상이 아니다.
허무주의를 주장하며 앞서 말한 영원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의미란 그 자체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실존주의이지 허무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 의미를 갖는지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존주의는 행복을 유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허무주의이면서 행복해지기를 고민하다보면 결국 실존주의에 가까워지고, 실존주의의 문제에 봉착하면 영원주의에 빠지거나, 행복하지 않은 허무주의로 결론이 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개념들을 확실히 분리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실존주의나 허무주의나 행복에는 별 도움이 되진 않는다.
행복해지기 위한 더 나은 대안은 허무주의도, 영원주의도, 실존주의도 아니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지에 대한 개념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 한가지 확실한 점은 허무주의에 빠질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허무주의 중 윤리 허무주의(moral nihilism)라는게 있다. 좋고 나쁜 행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만약 사람들이 이 관점을 모두 옹호 한다면 세상은 허무주의적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사실 이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 조차도 자세히보면 어느정도의 윤리적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근데 이런 관점을 옹호하는게 의미가 있기는 할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기가 말하는 그대로의 신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아마 윤리적 허무주의라고 할 때 그들이 의미한 바는 결국 윤리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뭐든 완전히 틀렸다거나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해는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허무주의가 아니다. 단지 절대적인 윤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20세기에는 허무주의는 정말 문제아였다. 하지만 요즘와서 허무주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가벼운 허무주의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인기를 끌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는 실존주의의 잔재에서 시작되었다. 실존주의가 의미는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각기 다른 사회 그룹이 서로 다른 선택을 할 때 여기에는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에 결국 갈등이 생기고 무력싸움으로 이어진다.
이런식의 허무주의는 요즘 포퓰리즘 권위주의의 기반이 된다. 이런 관점은 독단적이고 영원하면서도 무질서하게 허무주의적이다. 한번 정해진 사회적 개념은 계속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사실, 윤리, 정의에 대한 의미는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원하는가 정도로 축소된다.